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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 내삶에이유있음은 가사 나이 키 고향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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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로스 2020. 10. 1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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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1년 10월 30일 (78세)
일제강점기 경성부 용산면 한남정
본관
전주(全州)
신체
160cm, 48kg, A형
가족
아버지 이점성, 어머니 유상례, 2남 4녀 중 장녀
배우자
김창수
자녀
딸 정재은, 아들
종교
가톨릭(세례명: 체칠리아)
데뷔
1959년 〈열아홉 순정〉

대한민국의 가수입니다. 1960년대~1970년대 초반 가요계의 여제로 불렸으며,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유명하다.
1960년대 중반, 애절한 음색으로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노래한 영원한 엘레지의 아이콘.
국내 최초로 음반판매량 10만장을 돌파하며 신드롬적 히트를 기록한 국민가요 '동백아가씨'.
한국 가요 사상 최다 음반, 최다 취입곡을 기록한 대중가요의 살아있는 전설.

 

가수 활동 
대표곡으로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여자의 일생』, 『내 삶의 이유 있음을』, 『열아홉 순정』 등이 있다. 한국 가요계에서 각각 성별에 따라 절대적인 레전드라 하면 남자가수는 조용필을 꼽는다면 여자가수는 이미자를 꼽는데요. 조용필이 락부터 트로트까지 사실상 모든 장르에 손을 댔다면, 이미자는 트로트, 그 중에서도 특히 엘레지(Elegy, 애가)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59년 데뷔해서 대략 70년대 중후반까지 전성기였고, 80년대 조용필의 등장으로 밀려난 듯한 모습이 있었으나 여전히 대단한 위상을 누렸고 70~80년대 데뷔한 많은 여가수들이 지금은 은퇴 혹은 활동을 안하고 있으나 61년째 한국 트로트 가수 사상 최장기간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이미자의 노래는 일본 엔카 스타일의 곡 분위기와 창법으로 인해 왜색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동백아가씨』는 한때 금지곡으로 지정 당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미자의 히트곡들이 5음 음계 중심, 7·5조 가사의 폭스트롯이라 엔카와 음악적 문법이 똑같다. 왜색이기는 하나, 사실 60년대 당시 장년층 이상에게는 젊은 시절을 생각하게 하는 묘한 향수로 어필할 수도 있었을 거에요.

워낙 유명한 원로가수이지만 고령층에 안티팬이 상당한 편입니다. 아래 후술되겠지만, 첫남편과 이혼한 뒤 친딸을 외면하고 산 이야기나 후배 여가수 죽이기 등 나쁜 일화가 많아서 평이 상당히 안 좋다. 동시에 이미자 관련 뉴스나 유투브 댓글을 보면 나이 지긋한 분들의 악플이 꽤 많다(..) 이런 이유로 이미자 보다 패티김을 좋아하는 어르신들도 있으나 히트곡과 대중적 인기로는 이미자가 패티김을 훨씬 압도합니다. 또한 1000만장의 음반 판매 기록에 있어서도, 같은 트로트 가수인 후배 김용임 활동 이전의 전성기 시절인 1970년대 후반에 달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미자 이미지의 원천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여성상이다. 전쟁의 상처를 서서히 회복해가던 전후,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고, 화려하고 도회적이고 서구적인 이미지의 가수들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패티 김으로 대표되는 그 여가수들 가운데서 이미자는 고향의 여동생이나 누나를 연상시켰습니다. 그녀와 대비되는 패티 김은 서구풍의 가곡이나 스탠더드 팝 같은 우아한 곡들을 불렀고, 이와 대비되게 서구적으로 편곡한 민요조의 노래를 부르는 이른바 신민요 가수들도 있었지만 이미자는 사실 대중들에게 훨씬 친숙한 일본풍 엘레지로 대중들의 마음을 달래왔습니다.

총 2000곡이 넘는 노래들을 불렀습니다. 그 당시 '이미자가 싫어하는 여가수는 왕따를 당했다'는 얘기도 있었을 정도로 60년대 그녀는 대중음악의 아이콘이였고 그당시 한국전쟁 이후 민족의 한을 달래주던 여가수였답니다.

첫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딸 가수 정재은을 친딸로 대우하지 않고 냉대했습니다. 정재은은 2살 때 부모가 이혼한 이후 친어머니 이미자를 단 3번 만났다고 했는데, 가정사가 복잡하다고만 할 뿐 정확한 단절의 이유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90년대 후반 펴낸 자서전에서 이미자는 딸아이를 지금껏 보지 않는 것에 대해 정확한 언급을 피했으며, 이혼 후 아이를 보지 않았던 것은 전남편과 계속 얽히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일화는 일견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여성상에 모순되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합치되는 듯한 면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이미자 자신도 어린 시절 생모와 헤어진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전남편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이며 현 남편은 한국방송공사 PD출신.

2011년 12월 25일 MBC 창사 50주년 콘서트 <이미자와 친구들>에도 헤드라이너로 참석했는데, 이 콘서트는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단원을 격려하기 위한 자선콘서트입니다. 특히 그녀는 출연료를 세네갈에서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이에게 기부해 수술에 보탰다고. 이 콘서트에서 그녀는 직접 아이유에게 마이크를 건넸고, 아이유는 그녀의 데뷔곡 '열아홉 순정'을 불렀습니다.

2019년 5월 2일 은퇴를 선언. 그러나 28일 MBN과의 인터뷰에서는 은퇴는 아니라고 합니다. 실제로도 새해들어 2020년 2월에도 스케줄이 잡힌걸로 보아 정말 은퇴가 아닌 듯하다. 또한 2020년 10월 추석을 맞아 TV조선이 실시한 2020 트롯 어워즈에서 대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여담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전형적인 트로트 가수로 자리매김 했지만, 사실 데뷔 자체는 '열아홉 순정'이라는 제목의, 스윙 재즈 빅밴드 편성의 미국식 스탠다드 팝 스타일이 농후한 곡이었다. 50년대 당시는 주한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미국의 대중음악 문화가 직도입 되던 시기였고 대중 가수들 또한 미군 클럽을 중심으로 공연 활동을 해야했는데, 이미자도 당연히 이런 영향을 받았던 것. 그러나 이미자는 60년대의 동백아가씨의 엄청난 히트 이후에는 트로트 가수로 완전히 정착한다. 반면 동시대에 데뷔했던 패티김은 아예 그 후에도 꾸준히 스탠더드 팝 성향의 곡으로 활동했다.
이미자 사후에 성대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에서 이미 개런티를 지불했다는 '사후 성대 기증설'이 떠돌아다녔는데 당연히 사실무근이다.


2016년 8월 8일 소득을 축소 신고해 세금을 탈세했다는 판결을 받았고, 서울행정법원에 항소했으나 2018년 8월 7일 기각되었다. 세무조사 결과 수익의 상당부분을 현금으로 받고 신고하지 않거나, 남편의 계좌에 입금 혹은 아들에게 20억원을 증여하는 등 지난 10년간 총 44억의 소득을 고의 누락했으며, 추가 납부해야 하는 세금액만 20억원이라고 한다.


2017년 10월 1일 KBS 전국 노래자랑 서울특별시 서초구 편에 본선 심사위원 겸 피날레 초대가수로 등장했다. 평소 전국 노래자랑은 물론이고 가요무대에도 자주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미자 본인이 30년 가까이 서초구 반포동에 거주한 서초구민이었기에 출연료를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재능기부 차원에서 출연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날은 특별히 10분 더 방송을 했었다. 마침 촬영 당시 서초구에서 서리풀 페스티벌이라는 지역 축제가 열렸는데 그것의 일환으로 전국노래자랑의 촬영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당초 2016년에도 행사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스케쥴 때문에 불발돼서 아쉬웠다고 한다.


딸 정재은이 이혼을 겪은 후 공항에서 이미자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이미자는 "잘 살지 그랬니... 사람들 눈이 있으니 어서 가거라"는 말만 하고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트로트 이미지 때문에 무수히 많은 히트곡에도 불구하고 저평가를 상당히 많이 당했다. 일례로 1989년 가수 생활 30년 기념을 위해 세종문화회관에 대관신청을 했으나, "이미자의 노래는 '고무신짝' 들이 많이 들어와 질서가 없어지고 문화를 해친다" 며 대관 자체를 거부당하기도 하였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을 '고무신짝' 이라고 비하하는 소리를 직접 들으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이후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고건시장의 도움으로 대관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득실 댈 것이라던 세종문화회관 측의 예상과 달리 당시 정재계를 비롯한 고위층 인물들이 관람하러 왔고, 특히 4개 야당 총재들이 부부동반으로 직접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 등 공연은 성황리를 이뤘다고 한다. 이 후 이미자가 트로트 가수로서 처음 세종문화회관의 관문을 넘으면서 남진이나 심수봉 같은 후배 가수들 역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로미나의 커버 영상을 접한 이미자가 그녀를 직접 수제자로 받아들였고, 콘서트 때마다 초청하여 함께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이미자 내삶에이유있음은 가사

 

나 이제 노을길 밞으며 음~
나 홀로 걷다가 뒤돌아보니
인생길 구비마다 그리움만 고였어라
외롭고 고달픈 인생길이었지만
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산새는 울고
추운 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꽃은 피었어라
나 슬픔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 있음은 음~
나 아픔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 있음은 음~
내 안에 가득 사랑이
내 안에 가득 노래가 있음이라

황혼 밤 하늘에 별이 뜨듯이 
나 사는 외로움 속에서도 들꽃은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푸른 숲도 의미 있으니
나 슬픔 속에서도 행복한 날이 있었고 음~
나 아픔 속에서도 당신이 거기 계시니 음~
내 안에 가득 사랑이 
내 안에 가득 노래가 있음이라

 

대표곡
히트곡으로 분류되는 노래만 약 400여 곡에 달한다.

〈열아홉 순정〉 (1959년)
〈동백아가씨〉 (1964년)
〈지평선은 말이 없다〉 (1966년)
〈섬마을 선생님〉 (1967년)
〈빙점〉 (1967년)
〈서울이여 안녕〉 (1968년)
〈기러기 아빠〉 (1969년)
〈아씨〉 (1970년)

 

금지곡
1964년 《동백아가씨》를 발표하고 1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큰 인기를 끌게 되어 가장 인기있는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한일수교정상화의 정치적 영향을 받아[1] 왜색풍이라는 시비에 의해 방송금지곡으로 지정되어 1987년 6월민주항쟁이후 해금될 때까지 방송에서 접할 수 없었다.

영화
1967년 이미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영화 《엘레지의 여왕》이 만들어졌다. 감독은 한형모, 최남현, 남정임, 박노식이 출연하였다.

광고
1996년 : 명인제약 이가탄

 

수상목록
1979년 제14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특별 가수상
1977년 제12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1976년 제11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특별 가수상
1975년 제10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1974년 제9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1973년 제8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1971년 제6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1970년 제5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고인기 가수 (가수왕)
1968년 제3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고인기 가수 (가수왕)
1968년 제3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1967년 제2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고 인기 가수 (가수왕)
1967년 제2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1966년 제1회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2020년 제1회 트롯어워즈 트롯100년 대상

 

서훈
화관문화훈장(1995, 5등급)
보관문화훈장(1999, 3등급)
은관문화훈장(2009, 2등급)

 

관련 서적
《인생 나의 40년》 이미자 지음, 황금가지, 1999년,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 문옥배 지음, 예솔, 2004년, 
《한국 대중가요사》 이영미 지음, 시공사,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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