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백지영
출생
1976년 3월 25일 (44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적
대한민국
본관
수원 백씨
신체
169cm, 50kg, A형
학력
서울일원초등학교 (졸업)
진선여자중학교 (졸업)
은광여자고등학교 (졸업)
백제예술대학교 (방송연예 / 전문학사)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 / 학사)
데뷔
1999년 1집 앨범 Sorrow
소속
트라이어스 엔터테인먼트
종교
개신교(감리회)
가족
1남 2녀 중 둘째
배우자
정석원 (2013년 ~ 현재)
자녀
딸 정하임(2017년 5월 22일)
백지영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며, 1999년 여름 1집 앨범 ' sorrow'로 데뷔. 국내에 흔하지 않던 라틴 리듬의 댄스곡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선택", "부담" 등의 곡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사실 데뷔 전에는 '지영'이라는 이름이 흔하기 때문에 예명을 쓰자고 하여 백장미 혹은 백미르등의 이름을 고려했지만 다행히 본명인 백지영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하마터면 묘한 이름으로 불릴 뻔 했다. 댄스 가수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원래 가수 본인은 경악스러운 몸치여서 백지영의 춤 선생인 안무가 홍영주의 편에 따르자면 가수 아이비와 함께 자신이 가르쳤던 연예인 중 가장 몸치였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래서 원래는 발라드 가수로 데뷔할 예정이었고 타이틀 곡도 발라드로 정해져 있었지만 어느날 전세계적으로 리키 마틴이 히트하는 걸 본 제작자가 댄스 가수로 방향을 전환해 마침 앨범에 있던 라틴 댄스곡이었던 '선택'으로 데뷔곡이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백지영이 춤을 하도 못춰서 홍영주가 사장에게 발라드로 가면 안되겠냐고 애원했고 제작자쪽에서도 당황했지만 죽어도 라틴으로 나가야한다고 고집을 피워서 홍영주가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백지영도 워낙 강한 성격이었고 홍영주도 강한 성격이기에 험난한 연습 과정에서 많이 부딪혔지만 워낙 성격이 비슷하다보니 급격하게 가까워져서 결국 절친이 되었다고 한다. 이 인연이 대단한 것이, 홍영주가 안무가 일선에서 살짝 물러나 교육자로 넘어가기 전까지 6~7년간 백지영의 모든 안무를 다 홍영주가 도맡아서 담당할 정도였다. 일적인 부분 외에도, 한때는 사적인 시간까지 함께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99년 7월 1일, 1집 앨범을 발매하며 데뷔한다. 데뷔 초창기에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데뷔곡이었던 라틴 댄스곡 "선택"은 당시 박미경의 "집착", 룰라의 "기도"와 함께 당시 한국 가요계 라틴 시장의 가능성을 열었고, 이 라틴 장르에 대한 관심도가 슬슬 높아지자 백지영의 '선택'도 같이 자연스럽게 조명되면서 천천히 순위권에 도달하더니, 10위권 안에 머물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1999년 가요계의 트렌드는 엄정화의 "몰라" 이후로 사이버+테크노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였는데, 그 자리를 잘 비집고 빈집이었던 "라틴 시장"을 가장 먼저 선점한 전략이 먹혀 들어간 것. 비슷한 시기 등장한 여자 신인가수들이 죄다 테크노 곡을 들고 나온 것을 보면 제작자가 확실히 감이 좋았다. 더군다나 그 당시 기준으로 보기 드물던 털털한 성격에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더해져 가수 자체의 매력도도 상당했기에 더 주목받은 바 있다. 그 시절 유행하던 느낌과 달리 신선한 장르에 보기 드문 매력적인 마스크와 성격까지 더해져 남녀노소에게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원래는 1999년 9월 초부터 후속곡 "부담"으로 활동할 예정이었지만 활동을 끝내야할 시점에 오히려 "선택"의 순위가 상승하는 기현상이 발생하여 후속곡 활동을 1달 미루고 "선택"을 추가로 더 활동할 정도로 호조의 반응을 얻은 바 있다. SBS 인기가요 최고 7위까지 랭크되었고 kbs에서는 방송횟수 차트 1위에 오르며 주목할만한 성과를 얻었다.
이후 "부담"으로 후속곡 활동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타이틀곡 보다 더 높은 순위를 선점하며 99년 신인 가수중 가장 높은 반응을 얻는가 했지만...곧이어 이정현이 "와"를 들고 나와버리면서 신인상 수상은 실패했다. 하지만 "부담"은 당시 KBS 뮤직뱅크에서 MVP 후보에 올라 최종 2위까지 올랐고(99년 12월 14일 방송 기준.) 신인상 수상만 좌절됐을 뿐이지 그 해 가장 주목받는 신인 중 한 명이었던 건 사실이다. 그녀는 1집 활동을 마감하며 sbs 가요대전에서 테크노 부문 상을 수상하였으며 원래 데뷔곡으로 점쳐졌던 발라드 곡 "작은 바램"으로 3주간 활동한 다음 성공적인 1집 활동을 마쳤다. 그렇게 1집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2집 작업에 돌입했다고 하는데 그 덕에 백지영은 딱 3일 휴가를 얻었다고 한다. 어쨋든 백지영은 2집 앨범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나른하고 섹시한 느낌의 '선택'의 연장선상으로 가길 원했으나 어느날 타이틀 곡이라고 'Dash'라는 곡을 받게 되는데, 이 곡이 너무 본인이 생각하기에 여자 가수가 부르기에는 세고 투박하다고 생각한 탓인지, 이 곡을 빼겠다고 선언했었다고 한다. 너무 BPM도 빠르고, 안무가 나왔는데 골반을 앞으로 튕기는 강력한 부분도 너무 싫었다고 말했다.
다만 당시 백지영의 소속사 사장이 그 업계에서 손에 꼽게 호랑이 같은 인물이라고 정평이 난 사람이었고, 백지영이 'Dash;를 안부르겠다고 하자 사장에게 전화고 2~3시간 욕....을 먹고 겨우 마음을 다 잡아서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Dash'를 타이틀로 결정한 뒤 1집 활동종료 2개월 반만에 초고속으로 컴백한다. 2집은 발매되자마자 라틴 열풍을 타고 빠르게 히트하면서 그녀의 대표곡이 되어버렸고, 1집 때보다 더 강화된 대중성에 힘입어 2000년 여름에 가장 많은 인기를 끈 히트곡중에 하나가 됐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1위를 수상했고 MBC에서는 여자 가수 중 2000년 유일하게 3주 연속 1위를 수상했으며 각종 방송에서 이 노래를 패러디하면서 정상급 가수로 우뚝 섰다.
'Dash;의 인기가 채 식기도 전에 후속곡 "Sad Salsa"을 발표하는데 안무가 홍영주와 함께 밤을 새며 열심히 준비한 고난도의 살사 댄스가 주목받아, 타이틀 곡 못지 않게 여러 번 1위를 차지했고 2000년 하반기 리스피아르 여가수 선호도 조사 1위에 오르며 당시 "엄정화를 잇는 섹시 댄스 가수"로 인식되어 자리를 확고히 잡았다. 이 수식어는 그녀가 2집 활동 직후 겪는 스캔들 때문에 곧바로 식어버렸지만 백지영이 활동할 시절만 해도 엄정화에 견줄 만한 섹시 스타로 인정받았었다. 그때만 해도 엄정화가 여자 가수 톱씬에 있었기 때문에 그 뒤에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 엄청나게 메스컴에서 다루던 시절. 비슷한 시기 박지윤도 그 화두에 올랐었는데 이상하게도 두 가수 모두 2000년 이후로는 이렇다 할 큰 성과는 내지 못했고 이 타이틀은 결국 2003년 이효리가 가져가게 되면서, 아직까지도 이효리를 이을 섹시 스타 계보는 확실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당시 가요계는 여자 가수들의 강세가 아주 두드러졌는데 비슷한 시기 활동한 여가수들의 곡들만 모아봐도 라인업이 대단했다. 이정현의 "너", "줄래", 김현정의 "멍", "너 정말", 제이의 "어제처럼", 박지윤의 성인식 까지 여자 솔로 가수들이 가요계를 리드했다고 해도 과인이 아니었는데 이 중에서 가장 늦게 데뷔했음에도 결코 밀리지 않는 인기를 자랑했다. 그래서 MBC에서는 2000년 추석 특집으로 디바 BIG 5 스페셜을 편성할 정도였는데 백지영도 이 방송에 출연해 대표 여자가수로서 자리를 확실히 했다.
가을에는 삼속곡 "Tri-Angle"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노래마저 1위 후보에 올려놓으면서 완벽한 전성기를 보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시기 "Dancing All Night"이라는 발라드 곡으로도 이소라의 프로포즈 및 케이블 방송에서 잠깐 활동한 바 있었다. 행사에서 몇번 선보이는 노래가 아니라 방송에서도 소개된 곡으로, 이 곡까지 무려 4개의 곡으로 활동을 벌일 판이었지만 활동도 너무 길어지고 해서 결국 잠깐 선보이고 종료했다. 거의 앨범에서 4곡을 연속으로 활동한 셈. 2집 당시 하루 스케줄이 가장 많을 때 13개에 육박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의 대단한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이렇게 초살인적인 스케줄을 보내다보니 안무가 홍영주와의 트러블이 있었다고 하는데, 홍영주는 본인이 무대에 올라가지 않아도 항상 무대 모니터를 한 다음 백지영에게 피드백을 해줬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친듯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던 백지영에게 어김 없이 무대 피드백을 해주자, 백지영이 그 말을 무시한 채 댄서들을 뒤로 하고 본인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고 한다. 백지영 편에 따르자면, 몹시 지쳐있었는데 순간 그얘기를 들으니 너무 짜증이 났었다고 한다.
홍영주는 당시 최고 안무가였기 때문에 많은 가수들과 작업했었는데, 이렇게 스타들과 정을 나누고 나중에 상처받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백지영도 한 번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잠시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결국 백지영이 장문의 사과 메일을 쓰면서 홍영주에게 용서를 빌었고, 홍영주는 답장으로 '나는 동생을 잃기 싫다. 그러지 말아 달라'며 백지영과 화해했다. 훗날 밝힌 바로는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연예인은 백지영이 유일했고 보통 이런 경우 가수들은 다른 댄스팀으로 갈아타기 바빳다고 한다. 2집 앨범의 최종 판매고는 36만장으로 같은해 활동한 여자솔로들보다 2~3만장 가량 낮은 편이었지만 리스피아르 여가수 선호도 조사 1위 및, 2000년 여자 솔로 가수 중 가장 많은 1위 트로피를 가져가며 화제성으로는 1~2위를 다툴 정도로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조금 오버 보태서 그 해 유력한 대상 후보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1~2집이 대박을 거두자 소속산느 1~2집의 방송용 편집 음원과 미공개곡을 담은 컴필레이션 베스트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선택'의 방송용 음원은 그 어느 컴필레이션 앨범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다. 'Dash'dhk 'Sad Salsa'의 경우 방송용 편집 음원이 노래 몇몇 구간에서 비트를 살짝 더 해준거에 비해, '선택' 방송용 음원은 편곡 자체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그 방송용 음원을 구하는 팬들에게는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고있다. 하지만 한창 주가를 날리던 2000년 11월, 스캔들이 터지면서 급격하게 인기가 추락했다. 스캔들 이후 한국에서 컴백이 어려울 전마잉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2001년 6월 복귀를 선언했고, 3집 앨범 "Tres"를 발매했다. 타이틀곡인 <추락>은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했지만, 지상파 음악 방송 PD들이 사실상 백지영을 보이콧하면서 활동에 큰 지장을 받았고, 심지어는 뮤직비디오의 현란한 사이키 조명이 선정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지상파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결국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했으며, 1년 전만 해도 지상파 3사를 넘나들던 백지영은 케이블 음악 방송과 지방 방송, 클럽 행사 위주로 활동해야 했다. 후일담으로 당시 백지영은 소속사와 계약이 3집까지 되어있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빠른 컴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며, 후에 무릎팍도사에서 이때 3집 앨범이 빨리 발매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다만 이 3집의 퀄리티는 여전히 좋아서, 지상파 홍보 활동이 거의 전무했음에도 20만 장이 팔려나가 앨범 판매 수익 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만약 스캔들 사건만 없었다면 꾸준한 인기를 이어갔을지도 모른다는 평.
그렇게 고생끝에 2006년이 돼서야 5집 "사랑 안 해"로 복귀했다. 박근태가 작곡하고 뮤직비디오 감독인 차은택이 작사한 발라드곡으로 백지영은 이 곡을 통해 드디어 재기에 성공했다. 활동 초반에는 역시나 지상파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지만 이내 백지영의 컴백을 두고 대중들도 "이제는 그녀를 받아줄때가 됐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하더니 "사랑 안 해"의 인기도 치솟으면서 당당하게 지상파에 입성하게 된 것. 그렇게 "사랑 안해"는 대중들의 큰 관심을 얻으며 2000년 2비 발매 때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고, 2006년 노래방 최고 애창곡으로 선정되며, 연말에는 이 곡으로 여러 가요 시상식에서 상알 받게 된다.
6년만에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수상했을때 예상외로 담담했는데 사실 앵콜 무대를 하고 대기실로 와서 플라이 투 더 스카이와 스탭들이 축하해주자 엉엉 울었다고 한다. 거기에 평소 무뚝뚝하던 아버지에게 메시지가 왔는데 그 내용이 "브라보"였다고. 산전수전을 겪은 그녀에게는 감회가 아주 새로웠을 것이고, 이 일화를 인터뷰에서 자주 밝힌 바 있다. 이후 후속곡 "EZ Do Dance"로 활동하는데 녹슬지 않은 퍼포먼스 실력을 보여 호평 받았지만 "사랑 안 해"만큼 열럴히 활동하지 않아 지명도가 낮은 곡이다. 이후부터는 발라드를 주력으로 활동했다. 이전부터 입증된 가창력에 더해 매우 호소력짙은 목소리를 선보임으로써 명실상부한 실력파 여가수 중 하나로 다시 자리매김했으며 이듬해 2007년에는 발표한 6집 "사랑 하나면 돼"가 나름대로 선전했으나 "사랑 안해"에 비해서는 다소 뜨뜨미지근한 반응이였다. 그대로 꾸준한 방송 활동을 통해 안정적인 행보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7집 "총 맞은 것처럼"이 초대박을 내며 완벽히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백지영 본인은 물론이고 당시 주춤하던 작곡가 방시혁도 다시금 톱 작곡가로 재조명되었다. 다만 izm등의 음악평론가들은 기승전결 없이 곡 내내 단순한 멜로디만 반복하는 이 곡을 낮게 평가했다. 실제로 기존의 발라드 문법을 파괴하고 A-B 파트로만 되어 있는 단순한 구조이며, 곡의 가사 역시 지나치게 직설적이라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사실 실제로도 가사가 가슴 아프다는 얘기 빼고는 하는 게 없긴 하며, 단순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표현방식이 단순하고 직설적이라는 이유로 '이 곡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미학적으로 옳은 태도가 아닐 것이다. 사실 가사의 표현이 다양해진 지금와서는 그렇게 거슬리는 표현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당시 기준으로는 충격적이었다' 정도가 적절할 거 같다.
그리고 2009년 9월 싱글 "내 귀에 캔디"라는 곡으로 활동했다. 댄스와 가창력을 모두 갖춘 가수라는 것을 다시금 인식시켰다. 수많은 패러디가 양산될 정도로 이 앨범도 좋은 평을 얻었다. 여담으로 이 곡 덕에 남복이 상당히 많이 터졌다고 한다. 역대 파트너들이 2PM의 택연, 한민관, 김준, 이승기, 강호동 등이 있다. 원래 피처링하고 방송 활동을 같이 한 것은 2PM의 택연이다. 당시 무한도전 추석특집에서도 유재석이 백지영, 박명수가 택연으로 패러디 무대를 만들어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후 발매된 8집 '보통'은 음원차트에서 선전했으나 전작들만큼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고 활동 기간도 후속곡 없이 한 달 남짓으로 짧았다. 더블 타이틀처럼 공개한 댄스곡은 컴백무대에만 나오고 후속활동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드라마 아이리스의 OST '잊지 말아요'가 2009년 연말에,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OST ' 그 여자'가 2011년 연초에 이미 엄청난 대박을 낸 상태였던 데다가 나가수 출연으로 인지도도 매우 올라간 상태여서 본인 입장에선 큰 아쉬움이 없을 듯 하다. 사실 이 2곡을 8집 활동으로 포함하면 상당히 성공적이다. 물론 더 잘 되어서 나쁠 것은 없었겠지만.
그 이후 2019년 10월, 데뷔 20주년을 기념하여 미니 앨범 "Reminiscence"을 발표하였다. 한동안 출산, 라디오 진행, 콘서트 일정 등의 이유로 신곡은 발매하되 음악 방송을 통한 프로모션은 진행하지 않았는데, 4년만에 음악 방송에 출연해 타이틀 곡인 "우리가"를 선보였다. 그리고 11월 전국 투어 콘서트 "BAEK TSAGE"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총 9개의 지역에서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9개의 지역 중 3개의 지역 콘서트는 코로나 19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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